요한복음 2장 13-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을 완전히 엎어버리는 성전 정화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노끈을 만들어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의 상을 엎으시고 또한 동물들을 파는 상인들을 내 쫓아버리셨습니다.
선하신 예수님께서 왜 그들에게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이 변질되어가는 모습에 화가 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죄 지은 인간들이 죄로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혀있는 것을 동물의 피로 죄값을 치른 후에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이며 인간들을 이 성전을 통해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본래의 본질이 변하여 탐욕의 장소가 되어 버린 성전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분노를 표출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변질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것 입니다.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성전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 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경배 드리러 찾아오는 순례자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가 없는 빈껍데기의 성전에 찾아오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성전이 변질되어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멀리서 제사 드리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성전 앞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환전소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은 이웃을 위한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한 동기에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면서 아름답게 변화려 했던 것들이 더럽고 추하게 변질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만 변질은 인간의 탐욕으로 추해집니다. 변화에는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사랑의 표출이지만 변질은 사람들의 욕심에 의한 죄의 타락입니다.
지금 시대에 성전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성전 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끊임없이 정화시켜 나가야 죄로 인해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예배를 통해 주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어도 세상속에 바쁘게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죄로 물든 나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 마음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새롭게 변화되고자 다짐하지만 어느내 나도 모르게 변질되어 버리는 나의 마음을 발견하곤 실망하진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해버릴 수 없지요. 우리가 포기하면 우리의 마음은 갈수록 변질되어 마침내는 썩어 문드러 질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다시 새롭게 변화되고자 마음을 다 잡아 봅니다. 그리곤 우리의 마음의 성전을 새롭게 정화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현실적으로 변화는 어렵고 변질은 쉽습니다. 변화는 나의 희생을 동반해야 하지만 변질은 나의 유익이 먼저 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인 우리는 그래서 변화는 어렵고 변질은 쉽습니다. 나의 이기심, 나의 고집, 나의 독선등이 남을 아프게 합니다.
내가 변화되지 않으면 나는 변질되고 맙니다. 변화의 시작은 말씀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말씀을 순종하고자 갈등하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죄가 다시 나를 옛날로 돌리려는 죄가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나와 갈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속에서 벌어지는 영적인 전투이며 우리는 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면 변화될 것이며 실패하면 변질 될 것입니다. 오늘도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셔서 매일 매일 변화되는 삶을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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