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망에도 차이가 있다.

Pastor Lee 2023. 7. 3. 16:36

 

노예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서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은 그들의 입에 원망이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껏 노예로써 억압받는 자리에서 살아왔던 그들에게 힘든 삶의 무게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이상 노예가 아닌 상황에서도 그들은 원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라의 쓴 물 앞에서, 엘림을 지난 신 광야에서, 그리고 르비딤에서 그들은 마실 물과 먹고싶은 고기와 떡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원망을 했습니다.  가진 것없는 자의 신세 타령처럼,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을 주셨고 메추라기와 만나를 주심으로 해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아직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터져나오는 하소연이라 여기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요가 아닌 징계를 내리신 원망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불신과 불순종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시내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진군하라고 명령하시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파대로 행진하였습니다. . 그런데 광야 에서의 행군이 힘들고 지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원망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셔서 그들의 진영 끝에 불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원망과 진로의 결정체는 민수기 13장에 나오는 가나안 땅에 대한 정탐이 이루어진 후에 나오게 됩니다.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는 삽시간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두려움에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급기야 하나님에게 원망을 쏟아놓고 맙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결국 40년의 광야생활의 징계로 이어져 1세대들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두다 광야에서 죽고맙니다.  결국 원망의 끝은 광야에서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원망의 질이 다릅니다. 삶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나를 좀 돌아봐 달라는 하소연에 대해서는 그 필요를 채워주셨지만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원망은 하나님의 징계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 이러한 원망이란 단어가 딱 1번 나오는데 그것은 6 1절입니다.  그 배경을 보면 초대교회의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 빠지는 것을 본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장면입니다.

 

   당시의 초대교회는 성령의 능력이 차고 넘쳐서 급속도로 성장하는 중이였습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한 그룹은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유대땅의 토박이들이고 또 한 그룹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후 강제로 다른 지역으로 쫒겨나 살게되어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룹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그룹사이에는 문화와 언어가 달랐고 그래서 생겨난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었던 것이고 그 갈등의 원인은 불균형에서 오는 치우침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것이 결국은 원망으로 표현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원망이란 단어는 민수기에 나오는 원망과 그 뜻과 의미가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그것은 그 원망의 원인이 불신앙과 불순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사도들은 이 원망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순식간에 늘어난 성도들에 비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이 너무 많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그것은 말씀 사역도 부족함이고, 구제사역도 부족함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 명의 일꾼을 따로 세우고 자신의 부족함을 그들에게 넘겨 주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원망은 결코 불신앙이나 불순종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쪽에만 치우침과 부족함으로 생겨난 아주 자연스러운 하소연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교회든 치우침과 부족함은 있기 마련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초대교회도 그랬는데 지금 교회야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데 강단에선 늘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우리 마음에 가져다 준 죄라고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부정적인 단어이고 불신앙 스러운 단어이기에 늘 쉬쉬하면서 마음속에 불평과 불만이 생겨도 혼자 속으로 삭이며 마음의 병으로 만들어 가고 맙니다.   하지만 원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가는 원망도 있지만 오히려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다윗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의 원망과 불평을 시편에 담아서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습니다.  다윗은 자신 이 처한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늘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긍휼함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힘들고 지친 생활 속에서 나도 모르게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참지맙시다.  떳떳하게 하나님 앞에 그 원망과 불평을 들고 나가서 부르짓읍시다. 나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초라함 마저도 주님앞에 내려놓읍시다.  긍휼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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